돌멩이 조각

나의 불안에게

데굴데굴 굴러가 2024. 12. 22. 05:51

 

나의 불안에게

 

그런 밤이 있다.

아무 전조도 없이 불안이 찾아오는 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차가운 손끝을 서로 마주 잡는.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다 잠이 오지 않아 결국 몸을 일으키는.

잔잔하게 깔린 음악을 들으며 은은한 조명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런 밤이 있다.


나의 우울에게

 

약 덕분에 잔잔한 감정을 유지하다, 한 번씩 추락하는 날이 있다.

온갖 자기혐오에 시달리고, 극단적인 상상을 하다,

두려움과 우울함에 못 이겨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그런 날이 있다.

울다 지쳐 잠에 들고 일어난 날에는, 화장실 거울에 비친 눈이 퉁퉁 부은 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그저 멍하니.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세수를 한 뒤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공황에게

 

저녁때 병원에 가니까 사람이 많았다.

이래서 저녁에 병원 안 가는데, 오늘 늦은 건 나니까 탓할 사람도 나다.

오랜 시간 기다려 진료를 끝내고 나와 택시를 잡으려 하니, 퇴근시간이라 집히지 않았다.

안 잡히는 택시를 기다리는 것보다 6분 있으면 올 버스를 기다리는 게 낫겠다 싶어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에 사람이 많았다.

약간의 공황 증세가 있어 그동안 택시를 이용했는데, 요즘 상태가 괜찮아 보여 버스란 선택지를 골랐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긴장해서 저절로 힘이 들어간 몸, 차가워진 손발 끝, 메스꺼운 속,

사람을 최대한 담지 않으려는 시선처리를 보니 괜찮지 않은 듯하다.

더군다나 대문짝만하게 정신과가 적힌 약봉지를 들고 있는 상태에서 지인을 마주치는 난처함까지 콤보가 이어져 정신이 없었다.

 

이어폰을 끼고 바닥만을 보다 지나치는 정류장을 보니 사람이 많더라.

어두워졌는데 다들 어딜 가는 걸까.

 

히터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모를 땀이 나기 시작할 때쯤 내릴 수 있었다.

메스꺼움은 여전했지만 폐로 들어오는 찬바람 덕분에 살만해졌다.

학교 강의실은 잘만 가는데 왜 유독 대중교통은 어려운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어쩌면 강의실에서는 화면만 보고 있어서 그럴지도.

 

오늘도 정신과 약을 달랑거리며 집을 향해 가면서 나는 여전히 환자라는 것을 인지한다.


 

정신병을 앓는 모두에게 편안함 밤을.